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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운 Hot Issue] [광운인 릴레이 인터뷰] “영화기자를 꿈꾸던 청년, 세상을 기록하다”
조회수 590 | 작성일 2026.03.16 | 수정일 2026.03.17 | 홍보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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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기자를 꿈꾸던 청년, 세상을 기록하다”
: 영화 대신 세상을 담아내는 뉴시스 임종명 동문의 ‘진짜 기자’ 이야기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03)

임종명 동문이 출입하고 있는 국회의사당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누군가는 기자를 낭만적인 직업이라 생각한다. 현장을 누비고 세상의 이면을 들여다보며, 사람들이 모르는 진실을 세상에 알리는 사람. 또 누군가는 고개를 젓는다. 악플, 속보 압박, 박봉… 요즘 누가 기자를 하겠냐는 볼멘소리도 한다. 국내 대표 민영 뉴스 통신사인 뉴시스에서 17년을 보낸 임종명 동문에게 기자의 삶은 어떤 의미일까? 영화기자가 되고 싶었던 청년시절, 우연히 들어선 통신사 편집기자로서의 시작. 인생이 계획대로 흘러가는 법은 없었다. 영화를 사랑하고, 영화를 쓰고 싶었던 청년은 지금 국회 기자실에 앉아 대한민국 정치 한복판을 취재하고 있다.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 시네필을 꿈꿨던 청년
임종명 동문이 기자가 된 건 영화 때문이었다. 영화 보는 것을 좋아하고, 영화평 쓰는 것에 즐거움을 느꼈다. 부산국제영화제 자원봉사자로 참여해 영화를 보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기자란 직업에 관심을 가진 것도 영화기자가 되고 싶어서였다.
대학 시절 그는 학부 내 매체 비평학회 ‘자주언론’에서 영화평을 쓰고, 영화제로 워크숍을 떠나며 꿈을 키웠다. 4학년 때 씨네21, 무비위크, 필름2.0 등의 영화 잡지사 취업 준비를 시작했다. 하지만 채용공고는 올라오지 않았다. 기다리다 눈을 돌린 곳은 패션지 피처 에디터 자리. 영어 면접까지 갔다가 마지막 한마디를 끝맺지 못하고 고배를 마셨다.
“기회가 왔을 때 잡으려면 스스로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걸 그때 가장 크게 느꼈습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취업준비생 입장에서는 더 강하게 다가오더라고요.”
편집기자 3년이 만들어준 기자의 뼈대
그렇게 방향을 틀어 지원한 곳이 뉴시스. 2010년 2월 졸업식 전에 이미 입사해 있었다. 운이 좋았다고 말하지만, 준비된 자에게 찾아오는 기회였다.
통신사 편집부에서의 3년은 남달랐다. 쏟아지는 기사들을 섹션에 맞게 배치하고, 독자의 눈을 잡는 제목을 뽑는 일이었다. 그리고 사수의 혹독한 집중 케어까지.
“당시엔 참 힘들었습니다. 지나 보니 그 선배가 지금 기자로서의 제 태도를 만들어주지 않았나 싶어요.”

17년 동안 기자로 살아온 날들에 대해 이야기 하는 임종명 동문이 직업은 공부가 끝나지 않는다, 그래서 좋다
이후 17년 동안 그가 거친 출입처는 손에 꼽기 어렵다. 서울시청, 경찰서, 정부부처, 국제부, 문화부, 그리고 지금의 국회까지. 갈 때마다 새로운 세계가 펼쳐졌다.
“새로운 출입처를 가게 되면 그 분야의 이슈와 정책을 당연히 공부해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박학다식해지는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웃음)”
공부를 그만하고 싶어도 그만할 수 없는 직업. 처음엔 그게 부담이었지만, 그는 그것을 이 직업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로 꼽는다. 세상을 계속해서 배워가는 삶. 책상 앞에서가 아닌 현장에서.
“끊임없이 공부해야 하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현장 가까이에서 보고 듣고 느끼면서 채울 수 있다는 게 이 직업의 큰 장점입니다.”
하기 싫어도 하게 되고, 하다 보면 성장해 있었다
기자 생활에 낭만만 있는 건 아니다. 그는 솔직하게 말한다. 그만두고 싶은 순간은 분명히 있었다고. 속보 경쟁의 압박, 촉박한 마감, 쉴 새 없이 바뀌는 출입처, 그리고 이따금 쏟아지는 악플.
세월호 참사를 취재하며 팽목항에서 쓴 기사가 포털 메인에 오르던 날, 정작 그 기사에는 수많은 악성 댓글이 달렸다.
임종명 동문이 세월호 참사 현장 스케치를 하던 중, 부둣가에 새신발 한 짝이 덩그러니 놓인 것을 보게 되었다. 가까이 가보니 신발에 글씨가 적혀 있었다.
‘막내야, 친구들이 예쁜 신발 사왔다. 엄마, 언니, 오빠도 모두 보고 싶어, 기다린다.’
오후에 바다를 더 살피니 나머지 한 짝이 바위에 걸쳐 있었다. 거기에도 편지가 있었다. 애타는 가족들이 신발 한 켤레에 마음을 담아 보낸 편지였다.
그 기사가 그에게 오래 기억에 남는 이유는, 화려한 단독이어서가 아니라 말로 다 하지 못한 가족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전달했기 때문이었다. 기자가 할 수 있는 가장 본질적인 일을 했던 순간이었다.
잘 쓴 기사는 우리 사회를 바꿀 수 있다. 억울한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사각지대의 사람들을 돌아보는 것, 그것이 기자가 존재하는 이유라고 임종명 동문은 말했다.
그렇게 버티다 보면, 어느 순간 ‘취재하고 사람 만나고 기사 쓰는 것’이 당연한 일이 되어 있다고 그는 말한다. 하기 싫어도 하게 되고, 하다 보면 또 자신이 성장해 있는 것을 발견하는 것. 그것이 기자라는 직업이 주는 조용한 보상이다.

기자를 준비하는 광운인에게 현실적인 조언하는 임종명 동문
사람을 좋아한다면, 이 직업이 맞다
기자라는 직업의 매력을 한 마디로 표현해 달라고 했을 때, 그는 잠시 생각하다 이렇게 말했다.“사람 만나고 활동하는 거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더없이 좋은 직업군이라고 생각합니다.”통신사 기자는 특히 그렇다. 웬만한 현장 일정을 모두 소화하는 것이 기본이다. 국회 본회의장에서 대통령 탄핵 표결을 지켜보고, 새벽 택시 승차거부 현장을 누비고 참사의 현장에서 유족의 손을 잡는다. 그 모든 순간 기록이 되고, 역사가 된다.신문사나 방송사와 달리 통신사는 계약 매체에 뉴스를 공급하는 ‘뉴스 도매상’이다. 빠른 속보와 동시에 철저한 중립이 요구된다.“특정 지면매체나 방송사처럼 ‘성향’이 담기지 않게 해야하기 때문에 연차가 쌓여도 계속 신경써야 한다는 게 큰 특징입니다.”그는 이런 업무가 쉽지는 않다고 말했다. 연차가 쌓일수록 알아야 할 사람도, 내용도 광범위해지고 자기 관리를 하지 않으면 장점이 고스란히 단점으로 돌아온다. 그래도 그는 17년째 기자를 하고 있다. 이직 제안도 있었지만, 결국 이 자리를 지켰다. 이유를 묻자, 그는 수줍게 웃으며 말했다.“아직도 기자로 다양한 경험을 해보고 싶은 것 같아요.”AI 시대, 기자의 가치는 ‘진정성’ChatGPT가 기사를 쓰고, 유튜브 알고리즘이 뉴스를 추천하는 시대. 기자의 존재 가치에 대해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기술이 아무리 발달해도 결국은 진정성이 주효하다고 생각합니다. 정보 과잉 시대에 레거시 미디어의 역할 중 하나는 넘쳐나는 정보 중에 팩트를 정리해서 독자에게 전하는 겁니다.”그는 요즘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에서 AI 티가 나는 콘텐츠들을 접하다 보면 ‘이게 맞는 건지, 믿을 수 있는 건지’ 모르겠는 순간이 생긴다고 말한다. 그는 바로 그 의문을 해소해 주는 것이 앞으로 기자의 역할이 될 거라 믿는다.나는 그냥 기자가 되어 버렸다‘어떤 기자가 되고 싶은가?’ 인터뷰 막바지에 그에게 던진 질문이었다. 오랜 침묵 끝에 돌아온 답은 짧았지만 묵직했다.“우리 사회가 더 나아지는 데 일조하는 기자로 남고 싶습니다.”고리타분하게 들릴 수 있다. 하지만 팽목항의 새신발, 새벽 택시 현장, 용산 재개발 피해 주민의 목소리 등 그가 써온 17년의 기사들이 그 말에 무게를 더한다.기자는 부자가 되기 어려운 직업이다. 임종명 동문이 직접 한 말이다. 그러나 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가장 가까운 자리에 보고 듣고 쓸 수 있는 직업이기도 하다.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기자는 여전히 아름다운 직업이다.
★ 임종명 동문과의 인터뷰 영상 보러가기(이미지 클릭 시 유튜브로 이동합니다)
